모든 지적 체계란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유전과 사회적 결과에 의한 것이라 믿었던 역사주의자 김복진은 새 소년상이 드러내는 낙관적 역사관에 공감하고 기뻐할까.
이 시기 조선공산당에 입당하고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위원에 선출되어 정치와 예술 양 방면에서 역량을 펼쳤으나 1928년 일제에 체포되어 1934년까지 5년 6개월을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했다.원작자의 제작 방식을 담은 기사와 구술자료.
군살 없는 상체와 탄탄한 허벅지를 지나 왼발을 앞으로 내디딘 이 입상은 ‘최초의 근대 조각가이자 사실주의 미학의 선구자 김복진(1901~1940)의 ‘소년(1940)이다.이렇게 얻어진 2D 데이터는 프로그램(Reality Capture)을 통해 가상 컴퓨터 공간에서 3D로 전환함으로써.모델의 나이를 2차 성징이 지난 고교생으로 추정했다.
두 복원작가는 원작에 도달하고자 가능한 한 자신의 주관을 배제했다.전시는 김복진을 중심으로 18인의 작품 50여 점을 함께 선보이면서 사실적 인체 조각의 계보를 근현대 조각사 가운데 자리매김한다.
도판만으로는 확인이 어려웠던 측면과 후면을 구축할 수 있었다.
최근 첨단 과학기술의 도움과 젊은 조각가들의 열정.사람은 역사 속에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김복진.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정력과 박력을 갖은 예술혼을 추구했으니.김복진은 인생에 적극적으로 동세(를 끌어들이고).
출옥 당시 카프는 산하에 미술부를 두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김복진은 카프에 복귀하지 않고 창작과 교육에 몰두했다.두 복원작가는 원작에 도달하고자 가능한 한 자신의 주관을 배제했다.
Copyright © Powered by | 웹툰 갤러리|주유소 기름값 2주 연속 상승…휘발유 전국 평균 1593.1원 | site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