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시아권에서 마지막까지 수교국이었으니 의리 있었다고 할 순 있으나 대만은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 명동소재 대만대사관에서 마지막으로 거행된 하기식에 운집한 화교들이 대만국기인 청천백일기가 내려지는 모습을 울면서 지켜보고 있다.중국의 부상 이후엔 물론 달라졌다.
양국 수교 후 50년대 초에는 한국이 양식 부족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김신 대사의 요청으로 장 총통이 식량을 지원한 바도 있다.31년 전 단교 때 협의 소홀로 불신 이번엔 한·미·일 협력 강화 격변기 주변국과는 제대로 소통하고 있나 과거 대만은 혈맹 이상이었다.그런데 갑자기 ‘상처라니.
노 대통령의 임기 내 한·중 수교와 9월 말 중국 방문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만 했다.우리가 아시아권에서 마지막까지 수교국이었으니 의리 있었다고 할 순 있으나 대만은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우린 노태우 정부 때인 92년 8월이었다.
우리가 막판까지 잡아떼서다.문상균 서울사이버대 겸임교수(전 국방부 대변인)
그러나 경제적 지원 외에 인류의 지적재산에 기여하는 일도 중요하다.우리나라가 6·25의 폐허 속에서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것은 매우 대견한 일이다.
기초연구 투자는 빈약하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이라면 개인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시스템이 탄탄히 갖추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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